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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Book] 역발상 책 두 권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덕목입니다. 굳이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때로는 부와 명예를 안겨주기도 하는 창조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역발상이니 창조적 파괴니 하는 말이 강조됩니다. 여기, 도발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책을 모았습니다. 뇌과학으로 푼 창조적 파괴의 비밀 #1 데일 치후리란 세계적 유리공예가가 있다. 수수한 사발 하나가 몇 천 달러에 이르고 1986년엔 미국인 예술가 중 드물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단독 쇼를 선보이기도 한 거장이다. 그의 작품은 비대칭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데 치후리는 76년 영국 여행 중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한 뒤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었다. #2 1854년 크림 전쟁에 파견된 ‘간호학의 대모’ 나이팅게일은 병사들이 부상 합병증이나 영양실조 때문이 아니라 전염병 때문에 더 많은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원 도표 등 새로운 시각적 구성과 배열로 정리한 개혁안을 당시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한 개선을 이뤄냈다. #3 중국 출신의 찰스 왕이 세운 컴퓨터 어소시에이츠는 설립 10여 년만인 89년엔 연 매출 10억 달러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직원들을 정기적으로 해고하는 등 ‘공포문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결국은 회계부정이 드러나 왕은 2002년 이사회에서 사임해야 했다. 미국의 저명한 뇌과학자이자 신경경제학자인 이 책의 지은이는 이 같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자신과 세상을 바꾼 ‘창조적 파괴’의 비결을 제시했다. 바로 ‘다르게 보라’ ‘틀에서 벗어나라’ ‘두려움을 버리고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라’이다. 치후리의 경우 ‘상식파괴자’의 첫 번째 교훈을 그대로 보여준다. 꼭 극적인 수단에 의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육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물과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나이팅게일은 틀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의 실례이다. 그는 군 지휘관들과 다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시각적인 방법으로 이를 표현함으로써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찰스 왕의 사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경우다. 지은이는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는 것은 우리 뇌가 효율성의 원리에 따라 진화되었기 때문이란 의외의 주장을 편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정보로 현재 상황을 예측하는 ‘예측부호화(predictive coding) 기술’이나 정보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한 ‘범주화 기술’ 등이 작용해 우리가 기존의 생각,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책은 창의적 사고를 키워준다는, 그렇고 그런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르다. 뇌과학이 바탕이 되어 꽤나 설득력이 있고 흥미로운 사례도 여럿 나와 한마디로 ‘강추’다. 누구나 상식파괴자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실을 안다는 것 자체가 ‘새 출발’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으니까. 김성희 기자 --------------------------------------------------------------------------------- 안전한 길 대신 가고싶은 길 가라 미국 스탠퍼드대의 티나 실리그 교수는 종종 학생들에게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기대를 과감히 뿌리쳤던 경험을 들려달라고 말한단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의문을 품을 때 뛰어난 성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안전하게 정해진 길’을 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보통이지만, 실리그 교수가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 중 하나가 ‘과감히 규칙을 깨라’는 것이다. 역시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가르치는 교수다운 발상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정반대”의 내용이란다. 그는 “규칙이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전한 범위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안전지대에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연한 다음 단계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인데버(Endeaver)’라는 독특한 단체를 만든 린다 로덴버그는 예일대 로스쿨을 나왔지만, 주변의 기대와 통념을 뿌리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택해 성공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자신의 능력에 고정된 사고방식을 갖는 것을 경계하라고도 조언한다.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면 그와 배치되는 행동을 좀처럼 하지 않으니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우선 복권을 사라’고도 조언한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기회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실패와 포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꾸라고 한 대목도 흥미롭다. “포기는 우리에게 상당한 파워를 부여하고 상황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정해진 선 바깥에 있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회라도 그것을 붙잡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그 자신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원을 휴학한 채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획도, 목표도 없이 보냈던 시간이 결국 자신의 길을 찾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일률적인 잣대로 만들어진 ‘엄친아’ ‘엄친딸’, 그리고 ‘스펙’이라는 유행어는 혹시 스무 살의 청춘들을 더 소심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감옥’은 아니었을까. 강의록이면서도 개인적인 에세이 형식이 곁들여진 책엔 열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저자의 품성이 비춰진다. 스무 살이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30~50대에 알아도 좋은 것들이 많다. 이은주 기자

2010-06-08

[OC] [Book] 세종 업적 중 태반은 아버지 태종 덕…이순신 살았다면 선조가 살려뒀을까

오피니언 리더들과 최고경영자(CEO)들이 손꼽는 애독서들을 살펴보면 역사를 주제로 한 책이 많다. 오늘이 있게 한 어제를 살피고 오늘의 난국을 돌파할 지혜를 어제의 경험 속에서 찾으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역사는 현실을 비쳐보는 거울과 같다.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역사학자다. 그는 조선 왕조의 임금 27명을 리더십 차원에서 낱낱이 해부하고 평가해왔다. 세종은 태종보다 훌륭한가. 연산군과 광해군은 폭군이었는가. 조선의 임금 27명 중 현군(賢君)과 혼군(昏君)은 누구인가. 책은 이덕일 소장이 30년 가까이 연구해온 조선 왕들에 대한 통치 성적표라고 말할 수 있다. 꼼꼼한 사료 추적과 명쾌한 필치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글로 본지의 일요판 신문 '중앙SUNDAY'에 2008년 9월부터 연재되면서 최고의 열독률을 자랑한 글이다. 지은이는 평소에 조선 최고의 현군을 세종과 정조로 손꼽았다. 두 임금 모두 학문을 사랑하고 인본 정치와 새 문물.문화를 개발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 더 중요한 점은 미래 지향의 자세로 정치 보복을 자제하고 체제개혁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세종의 아버지 태종의 치적을 높이 평가한다. 태종은 개국 공신집단에 대한 피의 숙청을 단행한다. 법치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악역을 떠맡은 것이다. 태종.세종의 처가도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문치(文治)군주'를 세우려 양녕대군을 세자 자리에서 쫓아낸다. 지은이는 "세종의 업적 중 태반은 태종의 공"이라고 말한다. 조선 역사에서 피의 숙청을 단행한 또 다른 임금은 세조다. 하지만 책의 평가는 날카롭다. 세조는 태종과 달리 준법 세력들을 숙청하고 쿠테타에 앞장선 신(新)공신들을 비호한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법 위에 군림하는 1만여 명의 특권층이 양산됐다. 이들에겐 사람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면책특권 일반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조세 대납권(代納權)이 주어졌다. 단종 복위 기도사건 뒤엔 수많은 사대부를 처형하고 노예로 전락한 그들의 가족과 처첩들을 나눠가졌다. 유교국가 이념의 붕괴였다. 세조의 후사 예종은 공신세력을 꺾으려다 1년여 만에 독살된다. 그렇다면 최악의 폭군과 혼군은 누구였을까. 책은 분명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연산군.광해군을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 선조.인조를 '전란을 겪은 임금'으로 분류한다. 이 소장의 눈에 비친 연산군은 음란한 임금이 아니라 실패한 권력이다. 공신집단을 해체하려 했으나 그에 맞설 사림(士林)을 끌어안지 못해 고립무원의 처지에 몰렸다. 칼과 붓을 쥔 이들을 모두 적으로 돌렸기에 희대의 폭군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반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선조에 대한 잣대는 엄격하다. 선조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었다. 왕위 계승 가능성이 전혀 없어 애초부터 '준비 안 된 임금'이라는 얘기다.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린 선조는 동.서인 당파정치를 조장하고 수많은 전란의 징후를 외면했다. 왜군이 충주에 다다를 즈음엔 한양을 버리고 멀리 도망칠 궁리부터 한다. 임란 뒤 논공행상을 보면 선조의 그릇을 알 수 있다. 문신(호성공신)이 86명인데 비해 왜군과 직접 싸운 무신(선무공신)은 18명에 불과하다. 무신 숫자는 내시(24명)보다 더 적었다. 더욱이 류성룡의 전시 개혁입법인 면천제.작미법마저 무력화시킨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과연 그를 살려두었을까. 지은이 특유의 집념과 역사의식 현대적 분석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어쩌면 조선에는 이런 혼군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 권력이 특정 파벌에게 몰리면 반드시 족벌을 낳게 되고 이는 나라의 기본을 흔들어 쇠국.망국으로 치닫는다. 한국 사회는 요즘 금융위기와 천안함 사건 지방선거 등으로 요동치고 있다. 현실 극복의 지혜를 찾는 정.관계 리더와 CEO 역사학 연구자에게 이 책은 휴가철의 훌륭한 읽을 거리다. 앞으로 출간될 2권에는 독살설의 임금들 삼종(三宗:효종.현종.숙종)의 혈맥들 성공한 임금들 같은 테마가 들어간다. 이양수 기자

2010-06-01

[OC] [Book] 남의 불행으로 돈 버는 것은?

2004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 주를 강타한 뒤 생필품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평소 2달러 하던 얼음주머니가 10달러에 팔렸다. 지붕 위로 쓰러진 나무 두 그루를 치우는 데는 2만3000달러 하루 40달러 하던 모텔 숙박비는 160달러를 내야 했다. 냉장고며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고 당장 잠잘 곳을 마련해야 했던 시민들은 울분을 터뜨렸다. 마침 플로리다 주엔 가격폭리처벌법이 있었다. 이 법의 집행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공정가격'이란 무엇이냐에서 시작해 탐욕과 도덕의 문제로 번졌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먹으려는 탐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컸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유를 옹호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될 뿐 공정가격이란 없다." "가격 급등은 필요한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자극해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실보다 득이 많다." 이 같은 논리에 주 정부는 "비상 상황에서 강요받는 구매자에게 자유는 없다. 비양심적인 가격은 진정한 자유 교환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고 맞섰다. 정의(正義)의 의미와 그 실천적 방법을 다룬 이 정치철학 책은 이런 흥미로운 실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논쟁은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 즉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를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까지 대표적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 설명방식이 독특하다. 구제금융은 정당한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등을 실제 도덕적 딜레마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지은이의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共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며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기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만하진 않지만 딱딱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해 서로 자기 목청만 높이는 우리 사회에서 차분히 널리 읽혔으면 싶은 책이다. 김성희 기자

2010-06-01

[OC] [Book] 낯익은 영화 30편, 철학 개념 10개로 풀다

이런 책들, 낯익다. 대중 영화를 철학적 사유에 활용한 서적 말이다. 철학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일 테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합격점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몇몇 영화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힘을 쓰는 통에 외려 독자들이 멈칫 할 때가 많다. 해서 이 책의 제목 ‘스튜디오 필로(Studio Philo)’는 괜한 우려를 부른다. 난삽한 개념을 쏟아내며 영화를 분석한 책처럼 보여서다. 하지만 염려는 거두시라. 책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철학으로 영화를 파헤치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영화 장면을 불러들여 복잡한 철학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해낸다. 책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철학을 주로 다룬다. 두 철학자의 핵심 개념인 ‘의지·의심·자유·정념·고매함(데카르트)’, ‘만남·모방·의식·상상력·인식(스피노자)’ 등을 익숙한 영화 장면과 연결해 설명한다. 이를테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포레스트는 어느날 문득 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자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를 뒤따른다. 포레스트가 말한다. “사람들이 내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어요.” 책은 이 대목에서 데카르트의 의지의 철학을 호출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의지를 실천하는 데서 기인한다”는 얘기다. 책은 이처럼 낯익은 영화 서른 편을 불러내 10개의 철학 개념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는 철학 교사 자격을 지닌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다. 프랑스 대학 입시생들을 상대로 했던 ‘시네필로’란 강연을 책으로 엮었다. 영화 속 이미지와 스토리를 활용해 철학의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정강현 기자

2010-05-27

[OC] [Book] "암컷은 야망 좇는 기회주의자"…모성 신화에 도발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들을 때마다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 ‘어머니 은혜’는 희생과 돌봄의 위대한 상징인 모성(母性)에 바쳐진 찬사다. 이 책의 저자는 그 모성을 둘러싼 오랜 신화가 생물학적 진실과는 차이가 많다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까지 당신이 알고 있던 어머니는 잊어라. 세상 모든 엄마·암컷의 진짜 역사가 이것이다”는 식인데, 임신 출산을 맡는 어머니·암컷에게 자녀 사랑과 양육이란 본능이 아니다. 침대에서 섹스할 때 수동적이며, 정숙한 여성상이란 것도 가짜 신화이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심어준 이데올로기 내지 음모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인간역사에서 흔했던 영아(갓난아이)살해·유기 같은 사례와 진화생물학의 각종 ‘무자비한 진실’까지 반복해 들이댄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거둬들인 금싸라기 정보들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책은 ‘진화론의 성자’ 다윈을 때리며 시작한다. 진화론 자체야 더 없이 훌륭했으나, 19세기 사람 다윈 자체가 케케묵은 빅토리아 시대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떨어지며 추상적 사고가 떨어진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 비(非)과학적 주장에 대못을 박아둔 게 심리학자 프로이트다. “남녀의 성 구분이란 곧 운명이다”는 선언 말이다. 저자가 다윈을 때린다고 했지만, 그건 그를 되살려내는 노력이다.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과 함께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다. 짝짓기 상대를 결정하는 열쇠는 결국 암컷이 쥐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계의 거의 모든 수컷은 화려한 외모와 노래·춤 솜씨를 자랑하는데, 그래야 암컷의 선택을 받기에 좋기 때문이다. 성 선택 이론은 19세기의 ‘불편한 진실’이라서 쉬쉬해오다가 20세기 후반에야 페미니즘과 만나면서 꽃을 피운다. 그 하나인 다윈주의 페미니즘 신간 『어머니의 탄생』은 잘못 꿴 첫 단추 때문에 으르렁거렸던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의 화해 무드를 대표한다. ‘자기희생적인 어머니, 수동적인 여성’의 신화와 달리 뚜껑을 열어본 여성·암컷의 진실은 실로 만만치 않다. 동화 『샬럿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어미 거미처럼 새끼가 자기 몸을 파먹게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현실의 어머니·여성은 오히려 유연한 기회주의자다. 지금 바로 번식할까, 나중에 천천히 할까를 저울질한다. 한정된 먹이를 자식에게 동등 분배할지, 한 녀석에게만 몰아줄지도 매번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아주 무자비해진다. 물에서 사는 설치류 ‘코이푸’. 놀랍게도 이 녀석들은 암컷 새끼를 임신했을 경우만을 골라서 자연유산을 습관적으로 한다. 임신 14주 정도가 됐을 때 어미 코이푸의 배 크기를 보고 암수 여부를 귀신처럼 자체 감별을 해내고, 암컷을 뱄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유산시킨다. 번식 실패일까? 어미의 ‘맞춤 제작’이자 경영전략으로 봐야 한다. 인간사회도 그랬다. 극단적 사례이지만 강한 녀석을 고르려고 고대 그리스· 게르만·켈트 족 어미들은 종종 갓난애를 찬 물에 담가 “키울 가치가 없는 아기들을 죽게”(719쪽)했다. 저자는 기독교의 세례란 것도 이 끔찍한 ‘찬물 테스트’에서 나온 풍습임을 암시하는데, 이 대목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이 전하려는 포인트는 여성은 야망을 쫓고 이윤추구에 정신없는 CEO와도 닮았다는 점이다. 침팬지학자 제인 구달이 귀여워한 어미 침팬지 ‘플로’가 그러했듯이 어머니는 맹목적 양육자이기보다 기업가 내지 제왕이다. 영아 살해를 위협하는 다른 수컷으로부터 자식을 지켜내야 하고, 경쟁상대 암컷을 누르려면 모성이란 곧 야망을 뜻하기도 한다. 어머니·여성·암컷은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수행하며 그 사이에서 정치적 목표를 향해 곡예를 벌여야하는 능동적인 전략가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인데, 사실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다. 구문(舊聞)인지도 모른다. 원저 출간(1999년)에 비해 조금 늦은 번역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10년 새 서점가에 등장했던 진화생물학의 정보로 무장했다. 아쉬운 것은 매끄럽지 못한 번역문이 몰입을 방해한다. 일테면 “나쁜 버릇을 가진 노부인”이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문맥으로 보건대 “심술궂은 노부인”이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우리말에 서툴러서 나오는 어설픈 표현인데, 그게 의외로 잦다. 꽈배기 문장도 흔하다. “인간 종에서 어머니의 원조가 자동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시위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64쪽) 대체 이게 뭔가? “원조”란 “도움”으로, “시위의 대상이 될 수 있게”는 “의심받게 된”으로 각각 고쳐야 했다. 조우석(문화평론가)

2010-05-27

[OC] [Book] 과학사 이끄는 '거인 집단' 영국 왕립학회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올해로 창립 350주년을 맞았다. 왕립학회는 그야말로 과학을 통해 근대의 역사를 만든 단체다. 350년 동안 고작 3500명만이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하지만 이 적은 수의 거인들이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 뉴턴.프랭클린.로크.다윈.와트.패러데이 등등 세상을 바꿔놓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과학의 여명기인 근대에 설립된 이 학회는 현대과학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과학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이 책은 이 학회에서 지난 350년 동안 과학을 '과학적으로' 조직한 근대 지성인과 그들의 활동을 기리고 있다. 유명한 과학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한 22명의 내로라하는 과학 지성인이 필자로 나섰다. 이들은 과학사를 만든 왕립학회 회원들의 활약상을 되새김질하면서 과학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찰스 다윈을 다뤘다. 다윈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여 자연선택과 진화와 같은 자기만의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과학이 관찰과 기록 그리고 논리적인 설명에다 여러 가지 업적의 축적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22명의 필자는 각자 과학의 여러 측면을 각각 분석하고 있다. 미국 듀크대학의 토목공학 및 역사학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는 금문교를 비롯한 거대한 구조물이 기술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했던 엔지니어들의 집단 지성을 주제로 잡았다. 그런 대형 구조물은 멋진 외관을 창작한 건축가보다 과학기술적으로 그런 구조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엔지니어들의 업적이라며 그들의 이름과 역할을 찾아 기억하자는 제안을 한다. 재미난 것은 이 책에서 간략히 소개하는 왕립학회의 역사다. 탄생은 조촐했다. 1660년 11월 젊은 학자 크리스토퍼 렌의 천문학 강연에 모였던 10여 명이 유용한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단체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면서 생겨났다. 이 단체가 근대와 현대 서구 과학의 중심에 서게 된 바탕에는 '합리적인 운용'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의 과학저널을 발행하고 오늘날에도 유용한 '동료 평가제도'를 도입해 객관성을 강조했다. 놀라운 일은 이 학회가 처음부터 국제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저널 편집에 초기부터 바다 건너 독일인이 참여했다. 왕립학회는 영국에 국한되지 않고 서구 전체에 문을 연 덕분에 서구 과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해줬다는 분석이다. 개방의 힘이다. 왕립학회는 과학의 객관화와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힘과 명예를 가진 명문가 출신이 아니어도 과학적 성실성과 실험에서의 창의성만 확보된다면 누구도 과학에 기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채인택 기자

2010-05-25

[OC] [Book] DJ도 바웬사도 의뢰, 세계 선거판 장악한 그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은 눈물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튿날 DJ에게 미국의 유명한 정치컨설팅업체 소여 밀러 그룹에서 의미심장한 메모 한 장이 날아들었다. "패배 인정은 전략적으로도 온당하다. 이로 인해 닫혀버린 문도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225쪽 요약) 이 책에 따르면 소여 밀러 그룹과 DJ는 86년 계약을 했는데 그건 정계은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 복귀 타이밍을 언제로 잡을 것인지 '평화의 사도'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언제 이름을 올리고 어떻게 국제 로비를 할까도 세세히 조언했다. 97년 DJ의 대통령 당선은 그런 노력의 열매인데 책에 따르면 소여 밀러 그룹에 자문을 먼저 의뢰했던 것은 DJ 진영이다. 필리핀의 피플 파워로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그룹이 정치컨설팅의 총아로 등장했던 시점이었다. 소여 밀러 그룹은 달라이라마 레흐 바웬사 DJ 등 5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치인에게 자문을 제공했고 숱한 권력자를 생산해낸 주인공이었다. 60년대 후반 출범한 소여 밀러 그룹은 미래의 선거가 TV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선거 이미지 선거라는 걸 간파했다. 이념.소속정당보다 인물이 훨씬 중요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네거티브 전략도 일단 무기다. 고전적 민주정치를 대신하는 '이미지 정치'의 핵심을 파악했던 소여 밀러 그룹은 이후 잇단 지구촌 선거에서 자기주장을 입증해보이며 짭짤한 매출을 올렸다. 알파독(alpha-dog)이란 신출귀몰한 정치컨설팅 업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썰매개 무리에서 방향을 잡고 선두에서 이끄는 대장 개라는 뜻이다. 물론 이 책은 이미지 선거를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키아벨리적 선거판'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보너스 하나 -. 야비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잘 먹혀들까 먹히지 않을까?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삼 관심이 가는 대목인데 『알파독』의 입장은 "먹혀든다"쪽이다. 단 그게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역풍을 각오해야 한단다. 조우석(문화평론가)

2010-05-25

[OC] [Book] 흑백간 성관계땐 형벌…어제의 남아공을 만나다

우리에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분리'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와 '넬슨 만델라'로 기억되는 나라다. 이제 한 달 후면 이곳에서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 축구가 열린다. 세계의 눈이 아프리카 남단으로 몰릴 것이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남아공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만델라가 수감됐던 로벤섬에서의 축구 이야기 흑백 화합을 이뤄낸 럭비 월드컵 이야기 등. 여기 또 한 권의 남아공 관련 책이 나왔다. 남아공 근현대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소설 형식을 빈 역사책이다. 17세기 희망봉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이 조국 네덜란드와 영국을 상대로 싸우며 '아프리카너'(아프리카에 사는 백인)가 되는 과정 줄루족 등 토착민과의 전쟁 다이아몬드와 황금을 찾아 몰려오는 사람들악명을 떨쳤던 아파르트헤이트의 생생한 증언 만델라의 등장 흑백 화합에 공헌한 인물들. 읽다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신대륙 이주-독립전쟁-골드러시-인디언(네이티브 아메리칸)과 줄루족-흑백 갈등-마틴 루터 킹과 만델라 그리고 오바마. 그래 미국 역사와 완벽한 '데자뷰'다. 괴혈병으로 쓰러지는 상선 선원에게 제공하기 위해 희망봉 근처에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 것이 남아공 백인의 시작이라는 사실 아파르트헤이트의 배경에 아돌프 히틀러가 있었다는 사실 흑백간 성관계를 하면 7년 노역형에 처해졌다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내용이 눈길을 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간 것은 작가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능력이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시티 오브 조이' 등을 쓴 라피에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다. 그는 실존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역사를 풀어간다. 그가 30년전부터 수입의 절반을 세계의 빈곤과 싸우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은 남아공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이 책에 담겨 있음을 느끼게 한다. 손장환 선임기자

2010-05-20

[OC] [Book] 원흉과 영웅 사이, 이토 히로부미를 다시 보다

"경(卿)은 국가의 원로로서 혁혁한 훈공을 세워 그 이름이 일세에 풍미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근세의 4대 인걸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독일의 비스마르크 청국의 리훙장 그리고 일본의 경(이토 히로부미)으로 경이 지금 유일하게 생존해있다."(228쪽) 1898년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훈장을 걸어주며 했던 말인데 실로 굴욕적인 아첨으로 들린다. 9년 뒤인 1907년 이토는 그런 고종을 '뒷방 노인'로 밀어낸다. 순종과의 격리를 위해 덕수궁에 밀어넣다시피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은 실로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이토를 태자태사(太子太師) 즉 영친왕의 스승으로 모신 것이다. 예우는 친왕(親王) 즉 황제의 아들 급. 이 책의 저자의 말대로 나라를 삼키려는 인물에게 황족 예우까지 해주다니…. "외국인이 한국 황족이 된 일은 이토가 유일한 경우로 한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275쪽)인데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다. 실은 우리들은 각오했다. 책을 읽는 순간 저자가 예고했던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인정하건 하지 않건 이토는 거물 정치인이 분명했고 올해로 100년을 맞는 한국합방의 설계자다. 그 이전 일본에선 메이지 유신에 공을 세운 인물이고 역량 또한 무시 못한다. 나이 44세에 일왕의 바로 아래인 초대 총리대신에 올랐던 게 대한제국에서 친왕 예우를 받기 20년 전이다. 이 책은 한일 강제합병의 주역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위한 책이다. 일부러 치켜세우지도 내리 깎지도 않는다. 이토는 안중근에게 죽기 몇 해 전인 1901년 미국 예일대에서 명예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구에서 신흥국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본래 메이지 직전까지 그는 서양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한 왕정복고주의자였다. 시골 사무라이출신으로 암살 등 테러활동까지 서슴치 않던 그는 외국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잠재울 수 없어 갓 22세 때 영국으로 밀항을 떠났다. 밀항 시도만으로 목숨을 잃기 십상이던 당시 놀라운 결행이 분명했다. 하지만 런던대학에서 영어.수학.토목공학 등을 배운 6개월이 그의 삶을 모두 바꿔놓았다. 귀국 직후 개화론자로 돌아선 뒤 메이지유신 직후 천황의 신임을 얻으며 그는 승승장구했다.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사회의 변동까지 알려주는 이 책은 좀 더 치밀했더라면 문장에 감칠 맛이 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나열식 정보 전달도 걸린다. 하지만 용감한 시도임은 분명하다. 국내 독자들에게 심어진 '악한(惡漢) 이토' 이미지를 뚫는 것은 부담이었으리라.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일본 주오대 겸임강사로 있는 그는 일본 언론 매체에 한일관계 칼럼을 쓰고 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2010-05-20

[OC] [Book] "아비가 돈주머니 꿰차면 자식 모두 효자"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은 모두가 효자가 된다."-셰익스피어 "내가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나의 말은 요란한 꽹과리와 같습니다… 믿음.소망.돈 이 3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돈입니다." -조지 오웰의 『엽란의 비상』 중 "인간에게는 가난의 고통보다 이웃의 새 자동차에 대한 시기심으로 인한 고통이 더 힘들다"-갈브레이스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은 빈천(貧賤).언쟁.빈 지갑 등 3가지인데 그 중 가장 크게 상처 입는 것이 빈 지갑이다."-탈무드 모두 '돈'이라는 대상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책에선 돈에 대한 갖가지 지식과 이론 격언들을 소개하고 있다. 경영학자가 썼다고는 하지만 경영서라기보다 철학서에 가깝다. 어떻게 돈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돈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 것인가가 책의 주제다. 저자도 "돈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책 돈에 대한 지혜를 찾으려는 책"이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조개 껍질로 시작한 화폐의 역사부터 부자와 가난의 정의 부패와 청렴의 차이 각 종교에서 바라보는 돈의 속성까지 다루는 이슈도 다양하다. 이를 풀어내기 위해 동서양의 고전 역사서 국내외 신문기사 등 다양한 소스를 인용했다. 너무 사례가 방대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각 챕터 간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도 든다. 대부분 경제.경영서적이 주식시장이나 기업 전략 등 세부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금 한 템포 쉬어가면서 큰 숲을 조망해 본다는 기분으로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김필규 기자

2010-05-18

[OC] [Book] 공포의 전염병 뒤엔 고기에 대한 탐욕 있었다

조류독감 광우병 사스 구제역…. 원래는 가축질병이었던 것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전염병으로 번진 사례들이다. 책은 이처럼 지난 20년간 600종이나 되는 가축질병이 만연했음을 지적하고 그 원인과 대책을 파고든 보고서다. 캐나다 언론인인 지은이에 따르면 생물 상거래 급증 교통수단의 발달 도시 인구 집중이 어우러져 '생물학적 유행병'의 온상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세계화와 공장형 축산업 모델이 유전자 교환으로 인한 대혼란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광둥성 신드롬'이 좋은 예다. 8600만 명의 사람 수천만 마리의 돼지 1㎢당 25만 마리의 가금으로 차고 넘치는 중국 남부의 광둥성은 1900년 이래 두 차례 지구촌을 휩쓴 '인풀루엔자의 고향'이다. 돼지와 닭을 함께 사육하면서 바이러스 교환이 쉽게 일어나고 "바이러스가 쉽게 진화할 수 있도록 감염에 약한 가금을 최적의 수만큼 제공하기" 때문이다. 태국이 세계 최고의 닭고기 수출국이 되고 세계에서 소비되는 오리고기 중 4분의 3이 중국과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것도 모두 이 같은 '공장형 양계산업' 덕분이다. 하지만 이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딱 좋은 온상이 되며 각국 정부와 업계 인사 의 주장과 달리 조류독감은 야생 철새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 과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세계화의 진전으로 이같은 현상이 더 빨리 더 넓게 퍼지는 데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책에서도 현지에서 생산된 농수산물만 섭취하라 목초로 사육한 쇠고기만 섭취하라 등의 지침을 제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흥미롭긴 하지만 섬뜩하고 우울한 책이다. 김성희 기자

2010-05-18

[OC] [Book] 천재적인, 그러나 실수 투성이 도둑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란 책의 광고문구처럼 피식 웃음을 자아내는 소설이다. 여기 천재적인 그러나 운은 지지리도 없는 도둑이 있다. 존 아키볼드 도트문더. 37세. 절도죄로 수감됐다 가석방 돼 막 풀려난 그에게 50만 달러짜리 에메랄드를 훔쳐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의뢰인은 UN주재 탈라보 대사인 아이코 대령. 아프리카의 부족인 탈라보는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두 쪽으로 갈라졌는데 부족이 신성시하던 에메랄드를 반대파가 챙겼던 것이다. 마침 뉴욕에서 전시 중인 보석을 훔치는 대가로 1인당 성공보수 3만 달러 생활비 주당 150달러를 주기로 합의한다. (참고로 이 소설은 1970년에 출간됐으니 당시로선 적은 돈이 아니다.) 도트문더는 운전사 자물쇠 전문가 차량 절도 전문가 등 5명으로 한 팀을 구성한다. 면밀한 조사 끝에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만 팀원들의 실수가 이어진다. 에메랄드를 손에 쥐고 있던 그린우드는 잘못된 길로 도망가다 체포되기 직전 보석을 꿀꺽 삼켜버린다. 도망친 나머지 네 명은 그린우드를 교도소에서 탈옥시키는 일에 뛰어들어 아무튼 성공하는데 막상 에메랄드는 경찰서 구치소에 숨겨놨다는 것 아닌가. 그냥 계속 삼키지 그랬냐는 책망에 그린우드는 메스껍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한 번 꺼내고 나니 다시 삼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대중들은 이런 어설픈 도둑에겐 익숙치 않다. 쌍둥이 빌딩 사이에 줄을 걸쳐놓고 완벽히 탈출하고 김연아 뺨치는 유연성으로 레이저 감지 장치를 피해가는 게 세기의 도둑들 아닌가. 누구나 홀릴 만큼 매력적인 외모 하며…. 아무튼 그건 영화일 뿐이고 이 소설의 환상적인 드림팀에겐 매번 머피의 법칙이 강림하시어 경찰서에 이어 정신병원 은행까지 털어야 할 처지가 된다. 매끈하게 잘 빠진 캐릭터가 아니라 곧잘 실수를 저지르는 어딘가 어설픈 인물들이라 오히려 인간적이고 정이 간다. 인생이란 게 보통 실수에 허점투성이 아닌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1933~2008)는 미스터리 작가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받은 대중문학의 거장이다. '리처드 스타크' '앨런 마샬' '새뮤얼 홀트' 등의 다양한 필명으로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써내면서 에드거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뉴욕을 털어라(원제 The Hot Rock)』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이 작품 이후 존 아키볼드 도트문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10여 편 더 써냈다. 프랑스 인기 작가인 기욤 뮈소의 『당신 없는 나는』에는 명화 전문 절도범 아키볼드가 나오는데 이 작가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싶다. 다소 영화적인 기욤의 소설에선 실수하지 않는 도둑인데다 봉사활동까지 하는 품위있는 인물로 그려지긴 했다. 웨스트레이크는 '액션은 난무하되 폭력은 허용치 않을 것'이란 집필 윤리를 고집스레 지켰다고 한다. 폭력 대신 유머가 난무하니 반기지 않을 수 없다. 이경희 기자

2010-05-18

[OC] [Book] 미식의 천국 이탈리아, 비프스테이크 정당까지 있었다네요

책 제목을 보니 그 이유가 되게 궁금해졌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뿐 아니라 음식 이야기도 입에 달고 사는 이유 말이다. 이탈리아 요리는 입을 지배할 정도로 사연이 풍부한 것일까. 우선 작은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나폴리를 포함한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은 늪이 많다. 습한 데를 좋아하는 물소 즉 부팔라(버팔로)가 살기에 제격이다. 그래서 고대 로마 때부터 이를 많이 길러 우유 대신 부팔라 생젖을 얻어왔다. 문제는 이 젖이 우유보다 맛이 없다는 점. 그런데 치즈로 가공하면 '모차렐라 부팔라'라는 이름의 맛좋은 물렁 치즈가 만들어진다. 다양한 모차렐라 치즈는 지역특산물로 세계 곳곳에 팔려 나가 외화벌이에는 물론 이탈리아 음식재료의 세계화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같은 지역인 카프리 섬에서 이 재료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지역 특산요리를 낳았다. '인살라타 카프레제(카프리 샐러드라는 뜻)'라는 전채가 그것이다. 토마토와 모차렐라를 번갈아 얹거나 담고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푸른 바질 잎사귀를 얹은 뒤 짙은 녹색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한 해 처음 딴 올리브로 짠 기름으로 가령하지 않고 생식한다)를 뿌려 완성한다. 이 간단한 요리가 전 세계 이탈리아 식당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탈리아 요리 하나가 세계화된 배경에는 이렇듯 그 나라의 자연과 그것이 내놓은 특산물 그 특산물로 만든 지역 요리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있다. 지은이가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이탈리아 음식과 재료의 다양성이다. 북쪽 알프스 지역으로부터 남쪽 시칠리아 섬까지 이탈리아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줄 농산물 수산물 임산물 등 풍요한 식품 재료가 지천이다. 이에 따라 피렌체의 스테이크 밀라노의 리조토 카프리의 샐러드처럼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공동체가 그들만의 대표 음식을 갖고 있다. 그 지역에서만 완벽하게 요리되는 음식이나 그 지역에서만 재배하고 사육하고 가공하는 특산물이 있다. 이에 대한 지역민의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책은 이러한 지역 대표음식을 찾아 지은이가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발로 돌며 기록한 '나의 이탈리아 음식 순례기'에 해당한다. . 잠시 이탈리아의 엑기스라는 토스카나 지방을 돌아본 감상을 들어보자. 세계적으로 이름난 토스카나 요리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1인분 한 조각이 450g 이상이 나가는 큼지막한 비프스테이크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키안티 품종의 황소 허리 부분만 쓴다. 양념이나 소금 없이 바로 불 위에서 굽는다. 코라도 테데스키란 이탈리아 귀족은 1953년 비프스테이크 정당을 만들었다. 정당의 정강은 '1인당 비프스테이크 450g을 전국민에게 보장한다'였다. 발기인들은 '내일의 제국보다 오늘의 비프스테이크가 낫다'는 문구를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선거운동은 식사와 춤 그리고 복권추첨으로 이뤄졌다. 미스 비프스테이크 선발대회를 열기도 했다. 인기는 대단했다. 물론 득표는 보잘것 없었지만. 이렇듯 이탈리아 음식은 그 지역의 풍토의 주민의 품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 음식 이야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탈리아 음식을 체험하는 것은 곧 그들의 영혼을 만나는 것이다. 지은이는 러시아인이다. 이탈리아에 20년 넘게 거주하며 움베르토 에코 등 이탈리아 지성의 책을 러시아어로 번역해왔다. 말하자면 국외자인데 그런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해냈다. 숲은 숲 밖에서 되레 더 잘 보인다더니. 참고로 전 세계 패스트푸드에서 파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피자는 이탈리아 반도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날씬하고 기름기가 쏙 빠져 파삭하고 쫀득한 고전 피자만 있을 뿐이다. 채인택 기자

2010-05-13

[OC] 헌팅턴비치 명물 '오리 마라톤'…뜻깊은 행사에 참여하세요

헌팅턴비치의 명물 '오리 마라톤'(Duck-A-Thon) 축제가 오늘(14일) 오후 6시 헌팅턴비치 피어 플라자에서 막을 올린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이하는 오리 마라톤 축제는 매년 5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축제이며 수익금은 알타메드 헌팅턴비치 커뮤니티 클리닉 운영기금으로 전달되는 뜻깊은 기금모금 행사이기도 하다. 알타메드 헌팅턴비치 커뮤니티 클리닉은 매년 수천 명에 달하는 무보험 또는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고 있다. 16일까지 사흘 동안 지속되는 축제의 서막은 와인 시음회가 장식한다. 축제장 입장은 무료이며 시음회 티켓은 웹사이트 www.duckathon.org를 통해 40~50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현장에서 구입하려면 10달러를 더 내야 한다. 이틀째인 15일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축제가 진행된다. 하이라이트인 오리 마라톤 대회도 이날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웹사이트 등을 통해 미리 구입한 고무 재질의 아기 오리 수천 개가 헌팅턴비치 피어에서 투하된다. 조류의 흐름을 타고 해변에 먼저 도착하는 오리들의 주인에겐 푸짐한 상품이 주어진다. 마지막날인 16일 오후 1시엔 기업체 개인 등을 포함한 '큰 손' 기부자들이 참여하는 '엄마 오리' 경주가 열리며 오후 5시에 축제가 종료된다. 가족 나들이에 적합한 오리 마라톤 축제의 장터에선 70여 벤더들이 제공하는 음식과 예술 공예품 집안을 꾸미는 데 쓰일 다양한 장식품과 장신구 등을 접할 수 있다. 아동들을 위한 놀이 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있어 편리하다. ▷문의: (714) 500-0382 임상환 기자

2010-05-13

[OC] [Book] 연주자는 왜 연미복을 입을까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 주위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고리타분하다. 티켓값이 비싸다. 돈이 있고 고상한 소수의 전유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이런 이미지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호프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그가 바이올린 활 대신 펜을 들었다. “과연 20년 뒤에도 클래식 콘서트가 존재할까”라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이 사람들에게 가까워 지려면 대중들이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콘서트의 세세한 규칙들을 설명해주고 라이브 음악을 체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대중들이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소소한 것까지 안내한다. 연주자들이 왜 연미복을 입는지, 솔리스트는 악보를 반드시 외워야 하는지, 교향곡의 장과 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면 안되는지, 연주 중에 줄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는지 등 클래식 공연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지은이는 팸플릿을 읽으면 음악과 연주자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그는 이런 취지에서 바로크, 낭만주의, 현대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작가와 당시 사회적 배경을 알면 불협화음으로 이뤄진 난해한 현대음악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음악을 이해하는 데 반음, 온음, 화음을 알 필요는 없다. 음악이 어떤 느낌을 주고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면 음악을 이해한 것이다.” 저자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클래식을 머리로 알려만 하지말고 가슴으로 느끼라고 말한다.

2010-05-11

[OC] [Book] '예쁘다 다 용서' 항상 통하는 건 아니지요

1920년대 미스 아메리카 수상자들의 평균 신체사이즈는 32-25-35였다. 그러던 것이 60년대엔 역대 수상자들에 비해 가슴과 엉덩이 수치는 비슷하면서 신장은 평균 1인치가 더 커진 반면 몸무게는 약 2.25㎏ 줄어들어 부자연스런 신체라인으로 변했다. 급기야 영국 모델 트위기처럼 비쩍 마른 몸매가 여성의 이상형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화가. 작가 등 예술가들의 고유영역이던 '아름다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진화심리학자인 공동저자들은 다양한 실험 결과와 비교사회문화학의 결실을 동원해 '아름다움이 곧 선'이란 편견의 존재 등 인간의 외모가 지닌 매력의 정체와 신화를 벗겨냈다. 다행스런 연구결과 한 토막. 매력이 곧 장점이라는 편견과 달리 매력이 독이 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아름다우면 다 용서되는 것은 맞다. 실제 가상의 배심원단을 두고 한 실험에서 매력적인 피고는 그렇지 않은 피고보다 더 관대한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예쁘다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란다. 예쁜 여성의 경우 일반직에 취업하려 할 때는 유리하지만 임원으로 올라가는 데는 오히려 불리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상사들은 매력적이지 않은 부하의 실수는 운이 나빴던 것으로 보지만 매력적인 부하의 실수는 노력 부족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매력적인 부하가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또 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 역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례란다. 18 19세기 유럽에선 흑인 하인을 둔 상류층 백인 여성을 그린 그림이 쏟아지는데 이는 여주인이 희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사회구조의 산물이었다. 지은이들은 또 미의 기준이 사회환경의 불안에 영향을 받는다는 '환경안전 가설'을 소개한다. 미국 여배우들을 조사한 결과 사회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작은 눈.홀쭉한 뺨. 큰 턱을 지닌 성숙한 얼굴이 선호된 반면 안정된 시기에는 큰 눈. 둥근 뺨. 작은 턱의 얼굴이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지은이들의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된다. "미인은 당신의 눈에 띄는 여자고 매력녀는 당신을 알아보는 여자다."(20세기 초 미국 정치가 아들레이 스티븐슨) "아름다운 여자의 정의는 나를 사랑하는 여자다."(20세기 말 미국 소설가 슬론 윌슨) 이를 남자로 바꿔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수많은 선남선녀들에게 힘을 주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2010-05-11

[OC] [Book] 정치에서 와인까지···그 뒤에 숨은 치밀한 심리 전략

PR(Public Relations)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도의 심리 전략이다. 그 주체가 언론이든 정부든 기업이든 대중에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온갖 수단을 뜻하기도 한다. 메시지 전달이란 최종 목표를 위해 일종의 과장과 정보 왜곡 등이 은근슬쩍 포함되는 것도 물론이다. 이 책은 정치.경제.사회.환경 등 사회 각 분야에 숨겨진 PR 전략을 들춰낸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이자 기업 홍보 전문가로 활동했던 저자는 현장에서 길어낸 이론을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감춰진 정부의 PR 전략을 따져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위에 그어진 노란 선을 넘어 북한으로 건너갔다. 이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발로 넘은 최초의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부각하고 정상회담의 '평화' 메시지를 극대화 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또 당시 노 대통령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로만손 시계를 찼다. 이 역시 남북간 경제 협력을 정상회담 의제로 부각하려는 '상징'이었다고 풀이한다. 이 밖에도 책은 남대문 화재 등 굵직한 사건은 물론 명품.와인 등 일상 소재에 감춰진 PR 전략을 낱낱이 드러낸다. 넘쳐나는 온갖 PR 메시지를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정강현 기자

2010-05-11

[OC] [Book] 영화 25편에 얽힌 동서양 술맛 비밀

술꾼에게 술 마시는 까닭을 묻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 할 수 있다. 대신 술을 좀 알고 마시자는 말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년 전 중앙SUNDAY 매거진에 '씨네 알코올'이란 제목으로 영화 속에 나타난 술 얘기를 연재할 때 소회를 지은이는 마누라에 비유했다. "그렇게 즐겨 마시던 술에 대해 이렇게 몰랐다니. 수년간 살을 섞어온 여자의 가족 관계 혈액형 따위를 모르고 있었던 것과 같은 미안함과 궁금함이 뒤늦게 밀려왔다." 그리하여 자칭 애주가로서 통탄하면서 술을 공부해가며 마신 결과가 이 책이다. 25편 영화에 등장한 동서고금의 술맛이 읽는 것만으로도 코와 혀를 자극하며 알싸하게 취기를 돌게 한다. 가히 '음주 독서'라 할 만하다. "가끔씩 과잉이 그리울 때가 있다. (…) 낭만적인 것들의 과잉! 영화는 그리로 가지 못하지만 마가리타의 맛에는 그 과잉이 있다."(마가리타와 '마타도어'-테킬라의 키치 낭만의 과잉) 한국 풍토에서 폭탄주에 대한 언급이 빠지면 섭섭할 터. 가히 '폭탄주의 사회사'라 할 만한 흥미진진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글쓴이 본인의 풍부한 경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 "폭탄주는 말이 그리울 때보다 말에 지쳤을 때 마시는 게 좋다"는 구절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글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여러 가지 술 제조법과 품평이 딸린 팁(Tip)이 붙어 있는데 음주계(飮酒界)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는 내공이 절로 빛을 발한다. 맥주 칵테일 '에스프레소 콘 비라' 손쉽게 만드는 '임범 표 보드카 칵테일' 등 책을 잠시 제쳐두고 컬컬해진 목을 축일 수 있는 술냄새가 물씬하다. 언론인 심연섭(1923~77)은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술을 마신 사연을 『술 멋 맛』이란 한 권의 책으로 남겼는데 '국주(國酒)'를 자임했던 그는 술 끊는 이들에게 이런 노래 한 구절을 읊어주곤 했단다. '난 마셔요 그럼요. 난 살았거든요. 안 마시는 분들도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죽어간답니다.' 이 대선배의 경지까지는 아직 못 미친다 해도 술과 영화를 섞는 그의 배합술은 사람을 흔쾌히 취하게 한다. 왜 증류된 독주를 영어로 '스피릿(spirit)' 즉 영혼이라고 부를까. 이 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술꾼의 품격이 있다. 정재숙 선임기자

2010-05-06

[OC] [Book] 1분 43초간 의식 잃고, 21년 뒤 미래를 본다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이 꿈꾼다. 로또 복권도 맞히고 항공사고도 막을 수 있다. '와이 낫(Why not)?' 작가의 특권이다. 과학자들이 '순간이동' '시간여행' 같은 이론으로 증명하려 용쓰지만 불가능했던 가설을 소설가는 컴퓨터 자판 앞에서 상상력으로 완성한다. '플래쉬포워드(flashforward)' 영화에서는 이미 '미래장면 삽입'으로 친숙한 이 기법을 최신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고급스럽게 엮어낸 이는 과학소설의 샛별 로버트 J 소여다. 세계 3대 SF 문학상인 휴고상.네뷸러상.캠벨상을 한 손에 거머쥔 소여는 고생물학자가 희망이었던 이답게 그럴듯한 이론 무장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미드(미국 드라마) 팬이라면 이미 친숙한 '플래쉬포워드'는 최근 미국에서 방영시간이면 친목 모임이 취소될 정도로 시청률이 높은 화제작. 한국계 배우 존 조가 FBI 요원으로 등장해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 미드의 원작인 『플래쉬포워드』의 뼈대는 단 한마디. 2009년 4월 21일(이 소설은 1999년 출간됐다) 전 인류가 1분 43초 동안 의식을 잃고 21년 뒤 미래를 본다.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벌어진 강입자가속기(LHC) 실험이 그 원인으로 주목 받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는가 '이 순간'이란 개념은 환상일 뿐인가 불멸의 삶 보장이 인류의 희망일까 등 생각거리가 많다. 굳이 말하자면 '불가능은 없다'고 상식을 계속 뒤집는 과학의 발전 앞에서 조물주의 태엽이 감아놓은 법칙을 따라가는 인간의 한계를 다시금 되씹는 계기로 삼을 만한 읽을거리다. 다소 싱거운 결말을 대신해 이런 말로 위로를 받으면 어떨까. '이 지상에서 어떤 것보다 영구적인 것은 슬픔'이다 '시간은 죽음의 대행자'인데 '이에 저항하는 단 하나의 행동은 사랑의 행위'이다. 정재숙 선임기자

2010-05-06

[OC] [Book] KAL기 폭파 뒤에 미국 금융가문 있다?

#1947년 소련이 돌연 유대인의 이스라엘 건국을 찬성하고 나섰다. 칼 마르크스 시절부터 줄곧 시오니즘을 반대해 온 소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 선포 직후 누구보다 빠르게 독립국으로 인정한다는 발표를 내놨다. 심지어 앙숙인 미국과 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의 유엔 가입을 지지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엔 유대계 금융가문의 치밀한 공작이 있었다. 자신들의 정보력을 총동원해 미국의 원자탄 기술을 빼낸 뒤 소련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유대국가에 대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실제로 소련은 두 해 뒤 원자탄 개발에 성공한다. #1983년 KAL 007편 보잉 747 여객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요격기의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269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에 대해 줄기차게 의문이 제기됐다. 정보기관을 통해 실제 배후가 소련이 아닌 미국 금융가문의 소행이란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사실상 이들의 타깃은 탑승자 가운데 한 명이던 로렌스 패턴 맥도널드 미국 하원의원이었다는 것. 록펠러 가를 필두로 한 금융가문의 이익에 정면으로 맞섰던 그를 제거하기 위해 나머지 268명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쑹훙빙(宋鴻兵)의 신간 『화폐전쟁 2』가 또다시 논란 거리를 들고 왔다. 전작의 학습 효과 덕에 충격은 덜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책의 기본 전제는 1편과 동일하다.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국제 은행가문 클럽'이 전쟁.혁명 등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쥐락펴락 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2편에선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의 스케일이 더 커졌다. 포커스를 독일.프랑스.영국 등의 17개 주요 은행가문으로 넓혔고 관련 인물도 200명 넘게 분석했다. 저자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2007년 내놓은 1편에서 미국발 경제위기를 정확히 예견한 데다 모든 재앙을 로스차일드 일가의 탓으로 돌린 그의 시각에 많은 이가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주류학계에선 '음모론자'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침체의 골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그의 인기는 높아졌다. 저자는 지난해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40명'에서 후진타오.원자바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그가 내놓은 주장에는 더 확신이 차 있다. 세계 금융의 게임 규칙은 극소수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됐으며 이들의 계획에 따라 달러화는 틀림없이 파산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런 주장을 받아 들일지 말지는 결국 독자의 몫이다. 다만 "진실게임식 접근보다는 사실(fact)에 허구(fiction)을 가미한 '팩션(faction)'으로 읽으라"는 감수자의 조언이 가장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될 듯하다. 김필규 기자

201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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